비야, 비야
바다가 하늘로 갔나
풍채 훑어 내리는 장대비에
댓돌 앞마당은 금세 연못이 되고
상방 뒤뜰 앵두나무도 함빡 젖어
마루턱에 새파란 얼굴 들여놓고 있다
밭으로 가는 길 물길 된 참에
못 다한 세월 타령 매듭으로 이으며
어멍은 구멍 난 양말을 깁고
애꿎은 비 타박하다 지친 외할망은
툇마루에 새우잠 늘어져 있다
비안개 짙은 돌담 곁 수국 사이로
기다림은 하냥 어리고
꼭 누군가 걸어올 것만 같아
쪼그려 앉아 고개 까딱이며 나는
어멍의 가락 따라 콧노래 흥얼댔다
비야 비야 오지 마라 장독대에 물 골랐져
니네 누이 시집갈 때 명지장옷 다 적신다
※ 풍채 : (제주도말) 초가지붕에서 끝에 설치한 받침대.
바람과 볕을 막아주고 빗물을 마당으로 흘려보내주기도 함
※ 상방 : 대청마루
※ 골랐져 : (제주도말) 고였다
※ 명지장옷 : 명주로 된 장옷
※ 어멍 : (제주도말) 어머니
※ 외할망 : (제주도말) 외할머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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